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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의 시모음 - 이해인, 이채

by creator35340 2025.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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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의 시모음 - 이해인, 이채, 조병화, 안도현, 오광수, 오세영 시인 작품

9월의 시모음은 단순히 계절을 노래한 작품의 집합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한 삶의 성찰과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매개체입니다. 선선한 바람과 청명한 하늘, 그리고 들길에 피어난 코스모스는 시인들에게 사랑과 기억, 약속과 기다림의 언어가 되어 다가옵니다.

9월의 시모음9월의 시모음
9월의 시모음

이번 9월의 시모음 글에서는 이해인, 조병화, 안도현, 이채, 오광수, 오세영 등 다양한 시인들의 작품을 통해 9월이 가진 다채로운 의미와 감성을 되짚어 보려 합니다.

9월의 기도 - 이해인

저 찬란한 태양
마음의 문을 열어
온 몸으로 빛을 느끼게 하소서

우울한 마음
어두운 마음
모두 지워버리고
밝고 가벼운 마음으로
9월의 길을 나서게 하소서

꽃 길을 거닐고
높고 푸르른 하늘을 바라다보며
자유롭게 비상하는
꿈이 있게 하소서

꿈을 말하고
꿈을 쓰고
꿈을 노래하고
꿈을 춤추게 하소서

이 가을에
떠나지 말게 하시고
이 가을에
사랑이 더 깊어지게 하소서

감상평과 해설

이 시는 기도의 형식으로 9월이라는 계절에 부여된 빛과 희망, 그리고 사랑을 간구합니다. 단순한 풍경 묘사에 그치지 않고, 마음의 어둠을 지워내고 가볍게 길을 나서고자 하는 내적 다짐을 담고 있습니다. ‘꿈’을 반복적으로 강조한 부분은 인간이 계절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끊임없이 새로움을 갈망하는 존재임을 상징합니다. 또한 사랑이 깊어지는 계절이라는 종결부는 가을을 단순히 쓸쓸함이 아닌 성숙의 계절로 승화시킵니다.


가을 편지 1 - 이해인

하늘 향한 그리움에
눈이 맑아지고
사람 향한 그리움에
마음이 깊어지는 계절

순하고도 단호한
바람의 말에 귀 기울이며
삶을 사랑하고
사람을 용서하며
산길을 걷다 보면

툭, 하고 떨어지는
조그만 도토리 하나

내 안에 조심스레 익어가는
참회의 기도를 닮았네

감상평과 해설

짧지만 농축된 시어는 9월이 주는 ‘그리움’의 무게를 잘 보여줍니다. 하늘과 사람에 대한 이중적 그리움은 인간 존재가 자연과 사회 속에서 동시에 뿌리를 내리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바람의 단호한 속삭임에 귀 기울이는 태도는 겸허함을 강조하며, 도토리는 성숙과 결실을 상징합니다.


이해인 시인 프로필

  • 본명: 이해인
  • 출생: 1945년, 강원도 강릉
  • 직업: 수녀, 시인
  • 문학적 특징: 맑고 투명한 언어, 기도문 같은 서정성, 삶의 희망과 사랑을 강조
  • 대표작: 민들레의 영토, 작은 기쁨

9월의 시 - 조병화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의 여름만큼 무거워지는 법이다
스스로 지나온 그 여름만큼
그만큼 인간은 무거워지는 법이다

또한 그만큼 가벼워지는 법이다
그리하여 그 가벼운 만큼 가벼이
가볍게 가을로 떠나는 법이다

기억을 주는 사람아
기억을 주는 사람아
여름으로 긴 생명을
이어주는 사람아

바람결처럼 물결처럼
여름을 감도는 사람아
세상사 떠나는 거
비치파라솔은 접히고 가을이 온다

감상평과 해설

조병화의 시는 인생의 무게와 가벼움을 대비시키며, 여름과 가을의 계절적 전환을 인간 삶의 과정에 빗대어 해석합니다. 특히 ‘기억을 주는 사람아’라는 반복은 인간 관계와 기억의 소중함을 강조합니다. 바다의 파라솔이 접히는 장면은 여름의 끝을 은유하며, 가을의 도래가 곧 새로운 삶의 장을 의미합니다.

조병화 시인 프로필

  • 출생: 1921년, 경기도 안성
  • 사망: 2003년
  • 주요 활동: 시인, 화가, 평론가
  • 특징: 서정성과 철학적 사유를 결합한 작품 세계, 계절과 인간 존재를 결부한 상징적 언어

9월이 오면 - 안도현

그대
9월이 오면
9월의 강가에 나가
강물이 여물어 가는 소리를 듣는지요
뒤따르는 강물이
앞서가는 강물에게
가만히 등을 토닥이며 밀어주면
앞서가는 강물이 알았다는 듯
한번 더 몸을 뒤척이며
물결로 출렁 걸음을 옮기는 것을
그때 강둑 위로
지아비가 끌고 지어미가 미는 손수레가
저무는 인간의 마을을 향해 가는 것을

그대
9월의 강가에서 생각하는지요
강물이 저희끼리만 속삭이며
바다로 가는 것이 아니라
젖은 손이 닿는 곳마다
골고루 숨결을 나누어 주는 것을
그리하여 들꽃들이 피어나
가을이 아름다워지고
우리 사랑도 강물처럼 익어가는 것을

그대
사랑이란 어찌 둘만의 사랑이겠는지요
그대가 바라보는 강물이
9월 들판을 금빛으로 만들고 가듯이
사람이 사는 마을에서
사람과 더불어 몸을 부비며
우리도 모르는 남에게 남겨줄
그 무엇이 되어야 하는 것을

9월이 오면
9월의 강가에 나가
우리가 따뜻한 피로 흐르는 강물이 되어
세상을 적셔야 하는 것을

감상평과 해설

안도현은 강물의 흐름을 인간 관계와 사랑의 은유로 활용합니다. 뒤따르는 강물이 앞선 강물을 밀어주는 장면은 세대 간, 인간 간 연대의 상징이며, 사랑이 둘만의 것이 아니라 공동체적 확산을 가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습니다. 가을의 강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삶을 적시는 사랑’의 비유적 무대가 됩니다.

안도현 시인 프로필

  • 출생: 1961년, 경북 예천
  • 대표작: 연탄 한 장, 너에게 묻는다
  • 특징: 일상적 소재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공동체적 사랑과 사회적 연대를 강조

이채의 9월 연작

9월의 노래

9월의 노래 - 이채

나도 한때 꽃으로 피어
예쁜 잎 자랑하며
그대 앞에 폼 잡고 서 있었지

꽃이 졌다고 울지 않는다
햇살은 여전히 곱고
초가을 여린 꽃씨는 아직이지만

꽃은 봄에게 주고
잎은 여름에게 주고
낙엽은 외로움에게 주겠네

그대여!
빨간 열매는 그대에게 주리니
내 빈 가지는 말라도 좋겠네

  • 시는 꽃, 잎, 열매라는 생애의 단계로 나뉘며, 자기 존재를 타인에게 내어주는 삶의 태도를 보여줍니다.
  • ‘내 빈 가지는 말라도 좋겠네’라는 표현은 자기희생적 사랑과 성숙의 결심을 담고 있습니다.

중년의 가슴에 9월이 오면

중년의 가슴에 9월이 오면 - 이채

사랑하는 사람이여!
강산에 달이 뜨니
달빛에 어리는 사람이며!
계절은 가고 또 오건만
가고 또 오지 않는 무심한 사람이여!

내 당신 사랑하기에
이른 봄 꽃은 피고
내 당신 그리워하기에
초가을 단풍은 물드는가

낮과 밤이 뒤바뀐다 해도
동과 서가 뒤집힌다 해도
그 시절 그 사랑 다시 올리 만무하니
한 잎의 사연마다 붉어지는 눈시울

차면 기우는 것이 어디 달뿐이랴
당신과 나의 사랑이 그러하고
당신과 나의 삶이 그러하니
흘러간 세월이 그저 그립기만 하여라

  • 지나간 사랑과 시간에 대한 회고가 담겨 있습니다.
  • 계절의 변화와 인간 감정의 소멸이 교차하며, 인생 무상의 철학적 울림을 줍니다.

9월이 오면 들꽃으로 피겠네

9월이 오면 들꽃으로 피겠네 – 이채

9월이 오면
이름 모를 들꽃으로 피겠네
보일 듯 말 듯 피었다가
보여도 그만
안 보여도 그만인
혼자만의 몸짓이고 싶네

​그리운 것들은 언제나
산 너머 구름으로 살다가
들꽃 향기에 실려 오는 바람의 숨결
끝내 내 이름은 몰라도 좋겠네

꽃잎마다 별을 안고 피었어도
어느 산 어느 강을 건너왔는지
물어보는 사람 하나 없는 것이
서글프지만은 않네

9월이 오면
이름 모를 들꽃으로 피겠네
알 듯 모를 듯 피었다가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혼자만의 눈물이고 싶네

  • 들꽃은 이름 없는 존재의 상징으로, 겸허함과 무명의 아름다움을 강조합니다.
  • 삶의 흔적이 남지 않아도 자연 속에서 소멸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느껴집니다.

삶과 낙엽

삶과 낙엽 – 이채

낙엽이 떨어져 땅 위로 뒹굴며 말합니다
삶을 이루었노라고
내가 떠나서 거름이 되어야
푸른 녹색 정원을 이룰 수 있다고

나는 자신에게 묻습니다
내 삶이 다할 때
삶을 이루었노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내 후세에게
나의 삶이 과연 거름이 될 수 있을까

내게 던진 이 물음은
내 삶의 방향을 가르쳐 줍니다

  • 낙엽을 통해 삶과 죽음, 그리고 후세를 위한 거름으로서의 자기 성찰을 담습니다.
  • 자기 존재의 가치를 묻는 성찰적 시어가 돋보입니다.

감상평과 해설

이채의 시들은 공통적으로 ‘순환’과 ‘겸허함’을 주제로 삼습니다. 꽃과 열매, 낙엽과 들꽃을 통해 자연의 흐름 속에서 인간 존재의 의미를 모색하고, 무명의 아름다움을 수용하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이채 시인 프로필

  • 출생: 1957년, 전북 남원
  • 본명: 이규홍
  • 대표작: 그대 있음에 내가 있습니다, 가슴에 핀 꽃 한 송이
  • 특징: 평범한 자연과 일상을 통해 철학적 성찰을 이끌어내는 시 세계

9월의 약속 - 오광수

9월의 약속 - 오광수

산이 그냥 산이지 않고
바람이 그냥 바람이 아니라
너의 가슴에서, 나의 가슴에서,
약속이 되고 소망이 되면
떡갈나무잎으로 커다란 얼굴을 만들어
우리는 서로서로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가 보자

손내밀면 잡을만한 거리까지도 좋고
팔을 쭉 내밀어 서로 어깨에 손을 얹어도 좋을 거야
가슴을 환히 드러내면 알지 못했던 진실함들이
너의 가슴에서, 나의 가슴에서
산울림이 되고 아름다운 정열이 되어
우리는 곱고 아름다운 사랑들을 맘껏 눈에 담겠지

우리 손잡자
아름다운 사랑을 원하는 우리는
9월이 만들어놓은 시리도록 파란 하늘 아래에서
약속이 소망으로 열매가 되고
산울림이 가슴에서 잔잔한 울림이 되어
하늘 가득히 피어오를 변치 않는 하나를 위해!

감상평과 해설

이 시는 사랑과 약속을 계절적 풍경과 결합해 노래합니다. ‘산’과 ‘바람’ 같은 자연 요소가 인간 감정의 매개가 되고, 결국 약속은 소망으로, 소망은 열매로 확장됩니다. 9월은 단순한 가을의 달이 아니라 사랑과 약속이 성취되는 계절로 재해석됩니다.

오광수 시인 프로필

  • 출생: 1946년, 경남
  • 대표작: 사랑의 눈, 꽃보다 고운 사람아
  • 특징: 소박하면서도 서정적인 언어로 사랑과 자연을 노래

9월 - 오세영

9월 - 오세영

코스모스는
왜 들길에서만 피는 것일까.
아스팔트가
인간으로 가는 길이라면
들길은 하늘로 가는 길,

코스코스 들길에서는 문득
죽은 누이를 만날 것만 같다.
피는 꽃이 지는 꽃을 만나듯
9월은 그렇게
삶과 죽음이 지나치는 달.

코스코스 꽃잎에서는 항상
하늘 냄새가 난다.
문득 고개를 들면
벌써 엷어지기 시작하는 햇살,
태양은 황도에서 이미 기울었는데
코스모스는 왜
꽃이 지는 계절에 피는 것일까.

사랑이 기다림에 앞서듯
기다림은 성숙에 앞서는 것,
코스모스 피어나듯 9월은
그렇게
하늘이 열리는 달이다.

감상평과 해설

오세영은 코스모스를 통해 9월의 영적 의미를 탐구합니다. 들길에서 피는 코스모스는 인간 세계를 넘어선 하늘과 죽음을 상징하며, 기다림과 성숙을 강조합니다. 9월은 삶과 죽음, 인간과 하늘이 교차하는 초월적 달로 그려집니다.

오세영 시인 프로필

  • 출생: 1942년, 전남
  • 대표작: 어느 푸른 저녁, 하늘의 바람을 다는 법
  • 특징: 전통적 서정시를 현대적으로 계승하며, 자연과 인간 존재를 결합한 사유적 시 세계

결론

이번 9월의 시모음은 계절적 정취를 넘어 인간 존재의 성찰, 사랑과 약속, 기억과 무명, 삶과 죽음의 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해인의 기도와 희망, 조병화의 무게와 가벼움, 안도현의 강물 은유, 이채의 겸허한 삶, 오광수의 약속, 오세영의 초월적 성찰까지. 9월은 단순히 가을의 달이 아니라 인간 삶을 비추는 거울이자, 우리 내면의 길잡이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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